영혼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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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시조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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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14 14:34 조회1,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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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3장 16절

제 목 : 인류시조의 타락(2)


 지난 시간에는 "위에 있는 사람의 행한 선악의 보응이 위에 있는 사람에게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사람에게도 꼭 같은 보응이 흘러 내려간다"고 하는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또 "사람이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거기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관련된 만물도 꼭 같은 보응을 받는다"고 하는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 말씀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또 사망과 저주를 면하지 못하고, 사망과 저주를 그대로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조와 선배에게 대해서 교인들의 신앙을 책임지고 있는 교역자는 모든 교인들의 선조도 되고 선배도 됩니다.  믿음의 선조, 믿음의 선배가 되기 때문에, 교역자는 모든 교인들의 복의 근원이 될 수가 있고, 저주와 사망의 근원도 될 수가 있는데, 교역자의 행동에 따라서 모든 교인들과 거기에 관련된 만물이 축복을 받기도 하고, 이와 반대로 저주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일곱별과 일곱금촛대의 비밀이라"고 말씀했는데, "일곱별은"일곱 교회의 교역자요, "일곱금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교역자 한 사람이, 가정에는 신앙호주 한 사람이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라고 하는 데에 따라서, 거기에 소속한 사람들이 교역자처럼 신앙 호주처럼 복을 받기도 하고 화를 받기도 합니다.

 교역자가 화 받을 행동을 했으면 교역자 자신도 화를 받고, 교역자가 관할하고 있는 교인들도 화를 받게 되고, 또 호주가 화 받을 행동을 하였으면 호주자신도 화를 받고 가족도 화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필연적이요 원리원칙이요 진리입니다.  다만 거기서 변동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회개와 간 구로 변동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에 힘쓰는 것 보다 우리의 신앙선배를 위해서, 신앙 선조를 위해서, 신앙호주를 위해서, 육신의 호주를 위해서 기도에 힘써야하고, 또 그분들이 바르게 행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해서 힘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렇게 힘쓰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선배가, 교회의 교역자가, 가정에 신앙호주가, 육신의 호주가, 바르게 행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성공과 실패가 곧 우리의 성공과 실패요, 그리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가 곧 우리의 성공과 실패요, 그리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가 우리에게 소속한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요, 또 우리와 관련이 있는 모든 만물의 성공과 실패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동이 어떠함에 따라서,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고, 나쁜 것이 좋은 것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름진 땅이 황무지로 바꾸어질 수가 있고, 황무지가 기름진 땅으로 바꾸어질 수가 있고, 복된 땅이 저주받은 땅으로 바꾸어질 수 있고, 저주받은 땅이 복된 땅으로 바꾸어질 수가 있는데, 이렇게 연관성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것에게 대하여 심각하게 느끼지 아니하고,

 또 느낀다고 해도 그 사실을 사실로 활용한다는 것이 심히 어렵고, 껍데기가 많아서 복잡하고, 너무나 깊숙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이라, 사람들이 알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위에 있는 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와 같은 관심을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또 자기 밑에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자기와 같은 관심을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인데, 교회는 교역자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흥하고 망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가정은 호주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흥하고 망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선조와 선배에게 대해서는 전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쉽지마는, 교역자에게 대해서는 그렇게 않습니다.  교역자는 현재보다 미래, 인간과의 관계보다 사람들이 부인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이렇게 높은 차원인 신령한 면에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역자의 행동의 어떠함에 따라서 교인들의 생애에 흥하고 망하는 것이 결정되어도 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에서부터 내려오는 저주와 사망을 어떻게 하든지 벗어나도록 해야 하겠고, 또 우리자신이 만드는 저주와 사망을 벗어나도록 해야 하겠고, 또 우리에게 소속한 후손들과 후배들과 만물들에게 저주와 사망의 원인이 우리 자신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저주와 사망을 넘겨주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대하여 공의와 정의를 가지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자기에게 소속한 교인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자기에게 소속한 가족들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자기에게 소속한 사물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사람이요, 짐승보다 더욱더 미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속지도 아니하시고, 이용당하지도 아니하시고, 매수(買受:acquire by purchase) 당하지도 아니하시고, 그런 사람들의 힘에게 후퇴도 아니하시고, 정복도 당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에게는 인간 편에 있어서 천하에 무엇보다도 자기 신앙을 지도하는 교역자가 제1중요합니다.  교인들이 멸망할 죄를 범해도 교역자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멸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교역자가 "하나님이여, 내가 어떻게 해보겠으니 멸망시키지 마시고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멸망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교역자가 "하나님이여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처리하십시오"라고 하면서 하나님에게 맡기고 승인하면 하나님은 처리하십니다.

 또 교역자 다음에는 자기 가정에 신앙호주가 중요합니다.  가족들이 멸망할 죄를 범해도 신앙호주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멸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  신앙호주가 "하나님이여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승인하면 하나님께서 처리하십니다.

 그러나 신앙호주가 하나님에게 맡기지 않고 승인하지 않고, "하나님이여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1년이고 10년이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십니다.(출애굽기 32장 3031절, 누가복음 13장 69절 참조)

 그런데 교역자와 신앙호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방인(異邦人:안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권자(政權者)입니다.  정권자가 자기에게 관련된 중보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자기는 그 정권 자에게 소속해 있고, 그 정권 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정권자의 활동과 통치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정권자의 행동이 막바로 자기의 흥망을 좌우하기 때문인데, 보응에 대해서는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자기와 자기에게 소속한 모든 사람과 소유가 흥하고 망하고, 살고 죽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자기는 이렇게 복의 근원도 될 수가 있고 저주의 근원도 될 수가 있는데, 그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교인들도 자기의 신앙을 지도하는 교역자가 하나님 앞에서 "복의 근원인지, 저주의 근원인지" 그것을 살펴서, 교역자가 복의 근원이라고 하면, 교역자가 교훈하고 지도하고 책망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교역자가 저주의 근원이라고 하면 업어주고 안아주고 높여주어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따져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해서 범죄 하게 되었는지, 범죄 하게 된 순서인데 그 순서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다스 리라"고 명령하셨는데, 에덴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산을 다스 리라"고 하신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동산의 주인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는 동산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고 에덴동산의 주인으로 다스 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기가 살고 있는 자기 환경, 자기현실, 자기와 관련된 사물, 그것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다스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것도 "현실을 다스 리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현실을 다스리는 권세만 가졌지,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현실에 대하여 피동 되는 것이 아니고, 능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현실에 대하여 피동이 아니고, 능동이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자기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모든 것을 상대하고 취급하라"고 하는 말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피동으로 자기와 관련된 사람과 사물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운영하고 취급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 명령대로 모든 사람이나 사물에게 대하여 이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에덴동산 곧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고,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그곳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게 하신 위치요 처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닥쳐오는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 에덴동산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그 현실에서 하나님에게서 첫째로 받은 명령은 "동산을 다스 리라, 너는 피조물 속에서 살고 있지마는 어떤 피조물에게라도 내가 네게 명령한 그 명령대로 그것들을 상대하고 취급해야 한다"라고 하신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는데, 그것이 범죄 하게 된 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그 사실을 첫째로 굳게 잡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굳게 잡아야 하는고 하니,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의 원인이 되는 아담과 하와의 영향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야 되는,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범죄 하게 되었는지,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도 어떻게 하면 자기의 후손과 후배들에게 대하여 축복과 생명의 근원이 되지 못하고, 저주와 사망의 근원이 되는지, 거기에 대하여 알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어디든지 가도 좋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좋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좋습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에게 피동 되지 아니하고,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은 불행한 현실을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동하면, 불행한 그 현실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됩니다.

 다니엘에게는 사자 굴에 집어넣는 불행한 현실이 왔지만, 다니엘은 "사자 굴이라"고 하는 에덴동산, "사자 굴이라"고 하는 자기의 현실을 다스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사자 굴로 말미암아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아니하였고, 피동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그 현실에서 자기 자신도 자기의 후손도 "죽느냐 사느냐"고 하는 것이 결정되는데, 다니엘은 자기의 현실을 다스렸기 때문에,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후손인 유다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원인을 마련하였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원수들이 전멸되었고, 자기는 바벨론 나라의 총리들 중에서 수석총리(首席總理)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의 에덴동산,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느냐, 자기의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느냐"고 하는 거기에서 큰 불행이 큰 행복으로 바꾸어질 수가 있고, 큰 행복이 큰 불행으로 바꾸어질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에덴동산을 보호하라"고 하신 말씀인데,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아서 동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는 자기네들에게 오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들이 흥하는 것이나 망하는 것, 그것들에게 복이 오는 것이나 화가 노는 것이 자기네에게 매여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자기네들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고 하니, 아담과 하와가 "모든 만물이 원수에게 어떤 해(害)라도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내게 있으니, 그것들에게 어떤 해(害)라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되겠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것에게 대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에덴동산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나 사물들을 보호해야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게 피동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대하여 명령하신 그대로 행하는 것인데, 이렇게 에덴 동산을 지킬 때에 어떤 멸망이라도 방어할 수가 있고, 안보(安保:security)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멸망직전에 있던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예루살렘성에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예루살렘 성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고 하니, 한 사람의 하나님 명령대로 행하는 것, 곧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성에 대하여 행하는 것이, 예루살렘 성을 안보할 수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도 자기의 현실에서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현실에서 그것들에게 피동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들에게 대하여 행하면, 어떤 멸망이라도 방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의 보호가 자기네들에게 매여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에덴동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게 된 원인 중에 두 번째 순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을 지켰으면, 자기자신들과 동산을 망치는 뱀이 에덴 동산 안에 들어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오지도 못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행위로 모든 것을 안보할 수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 이하에 보면, 엘리사가 불 수레와 불 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를 보고 "이스라엘의 병거(전차:chariot)와 마병(기병:cavalry)이라"고 말한 것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켰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계약도 그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이 자기 가정의 안보, 자기 사화의 안보, 자기 나라의 안보(安保)를 위하여 믿음으로 살면, 아무도 그것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다시 말해서 "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괴를 당하기도 하고 보호를 입기도 한다"고 하는 그 권위와 위치를 상실하면, 자기와 자기에게 소속한 모든 것이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곧 자기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그 권위, 자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통치 할 수 가 있고, 안보 할 수 있는 그 권위,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권위요 위치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믿는 사람 자기만 있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 자기의 하는 일은 하나님과 믿는 사람 자기만 있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 자기의 하는 일은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삼도록 하는 것인데, 그것이 복의 기관이요, 우리 믿는 사람의 위치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삼으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것으로 온전히 되어지고, 또 자기자신이 하나님의 것으로 되어지면, 하나님의 것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 거기에 대하여 잊어버리면, 자기자신과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들은 멸망이요,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이행하면 자기자신과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이 안보를 받게 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안보의 권세를 행사하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에게 행하는 것인데, 그것이 에덴동산 곧 자기의 현실을 지키는 것입니다.

 (3), 에덴 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지키지 아니한 하와가 간교한 뱀을 용납한 것입니다.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로 간 것은, 간교한 마귀가 피조물 중에 땅에 있는 것으로서 마귀의 간교성에 가장 쉽게 말려들 수 있는 뱀을 택하여 이용한 것입니다.

  또 간교(刊校:간사하고 교활 함:crafty)한 뱀은, 사람들 중에서 간 교에 제1잘 말려드는 여인 곧 하와를 선택하여 이용하였습니다.  또 하와는 자기의 간 교에 제1잘 말려드는 아담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간교한 마귀는 간 교에 잘 감염되는 간교성 있는 뱀을 택하여 이용하였고, 또 간교한 뱀은 남자를 택하지 않고 간교성에 미혹 받기 쉬운 여인을 택하였고, 또 여인은 다른 만물을 택하지 않고 여인의 간교성에 미혹 받기 쉬운 남자를 택하였습니다.  남자는 만물의 간 교에는 미혹 받지 않지마는, 여인의 간 교에는 미혹을 받습니다.  또 여자는 다른 것에게는 미혹 받지 아니하지마는, 자기를 유익 되게 하는 간 교에는 미혹을 잘 받습니다.

 그러면, 간 교는 어떤 것인가? 간 교는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간 교를 다른 말로 하면 "외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겉과 속이 어떻게 다른가?

 (1), 겉으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마는, 속으로는 사람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높이고 위하고 생각하는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인간을 높이고 위하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좋게  한다, 하나님을 높인다"고 하면서 실상은 사람을 좋게 하고 인간을 높입니다.

 (2),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말하지마는, 속으로는 자기자신입니다.  입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자신을 위하고, 입으로는 "다른 사람을 높인다"라고 하면서 자기자신을 높입니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자신을 높이고 위합니다.

 (3), 겉으로는 옳은 것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비뚤어진 것을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비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의 목적은 비뚤어진 것을 세우려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의 목적도 비 진리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4), 겉으로는 일을 건설하는 것 같지마는, 속으로는 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일을 건설한다"고 하는 껍데기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파괴시키려는 것입니다.  일을 건설하는 것의 목적은 파괴시키는 것인데, 위에 말한 고든 것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고 하니 "자기중심 자기위주에서"나오는 것입니다.  다른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 이 두 가지를 잊어버렸을 때에 그 다음에는 간교한 술책에 빠지게 되었는데, 다스리고 지키는 것을 하지 아니하면 간 교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순서인데, 두 가지를 행하지 아니하면 간 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게 된 기초공사(基礎工事:기초를 닦는 작업:foundation work)는 어떤 것인고 하니, 에덴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한 것과 지키지 아니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간교한 뱀이 온 것입니다.  두 가지를 행하면 간교한 뱀이 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유명하고 위대하다"고해도 간 교에 빠지면 가치 없는 사람인데, 에베소서 4장 14절에 보면 사람의 가치와 실력을 가리켜서,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요, 모든 교훈의 풍조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아무리 유명하고 신임이 있고 위대해도 간 교에 빠지면, 그 사람은 언제든지 마귀의 밥이 됩니다.  소용없습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면, 간 교를 어떻게 하면 알 수가 있으며, 간 교를 간 교를 볼 수 있는 눈은 어디에 있으며, 간 교의 말을 간 교의 말로 들을 수 있는 귀는 어디에 있는가?

 에덴동산을 다시 리고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곳에는 없습니다.  에덴 동산, 곧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간 교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두 가지를 가지는 데에는 간 교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간 교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아담과 하와가 함께 있었으면, 뱀이 역사를 하지 못합니다.  아담이 하와를 지킬 책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담이 하와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그 틈을 타서 뱀이 하와를 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는 마귀의 간 교에 미혹을 제1잘 받는 뱀을 택하여 이용하였고, 뱀은 뱀의 간 교에 미혹을 제1잘 받는 하와를 택하여 이용하였고, 하와는 다른 것을 택하여 이용하지 않고 여인의 간 교에 미혹을 제1잘 받는 아담을 택하여 이용하였습니다.

 그런데 간교한 것은 마귀인데, 마귀는 간 교에 잘 말려드는 그런 자를 선택하여 이용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를 통해서 역사 합니다. 우리는 간 교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간 교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고, 간 교를 알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알 수 있는 지혜를 가지려고 하면 다스리고 지켜야하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려고 하면 다스리고 지켜야하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려고 하면 다스리고 지켜야하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려고 하면 다스리고 지켜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켜서 마귀의 간 교를 알 수 있는 지혜, 간 교를 볼 수 있는 눈, 간 교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마귀의 간 교를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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