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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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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10 20:35 조회1,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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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어떤 분들은요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기도를 못해서 그냥 쑥스럽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분의 그 답변을 들어보면 “기도는 그냥 어머니 아버지께 하는 것처럼 편안히 하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라고 표현을 하시 더 라 구요.

 

 A : 예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니까 그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혹은 묻는 것이고, 혹은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런 것이지요.  

 

  Q : 그런 설명을 듣고 기도를 실천하셨는데 그분이 기도 하시기를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형님은 잘 있습니까?  그런 기도를 하셨대요.

 

  A : 그래요!  저도 처음에 교회 나가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기도를 아주 유창하게 잘하는데 저는 한마디도 못했단 말 이죠  그래서 그때 무슨 행사가 있어서 온 교회가 다른 곳에 다 가버리고 저 혼자 교회 남아 있는 날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나도 참 기도를 저렇게 유창하게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혼자 조심스럽게 기도실에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 나도 기도를 좀 잘 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했는데 사실은 응답된 것 아닙니까? 이미 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가만 그 뒤에 생각해 보니까 기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그 자체가 벌써 기도 더 라 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가만히 읽어 보니까 우리가요 들어야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을 내가 자꾸 듣다보면 나도 할 말이 생기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잘 못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 들었기 때문에 말을 잘 못하는 거거든요.   그런 말이 있죠.  왜 장애인들 중에서 말씀을 못하는 그런 분들은 귀가 안 들리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그러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은 자연히 그저 듣다보면 나도 할 말이 나오죠.  아직은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 뜻에 대해서 아직도 별로 들리는 게 없기 때문에 아직 할 말도 많지 않은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너무 오랜 세월 보내지 말고 기도의 문이 트이는 게 좋습니다.   저처럼 그저 “저도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기도가 되니까요.  저는 사실 기도가 그렇게 시작됐어요.   저 혼자서 그리고 이제 시골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저는 아무 준비도 안 되고 있는데 저녁 예배 시간에 그저 사회하시는 전도사님이 절 보고 누구누구 씨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지명하는 바람에 아이고 얼마나 당황 했는지요 그냥 온 몸이 불을 담아 붓는 것처럼 화끈 달아오르는데 나중에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떻든 사람들이 아멘 그러 더 라 구요.   그래서 나도 무슨 말을 하고 끝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그저 기도를 하게 되가지고, 기도는 사실 쉬운 것 이면서 어떤 면에서 기도는 해 갈수록 기도가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지만은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아버지라 그렇게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도 그러나 역시 하나님 앞이니까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겠고 그래서 성경 말씀을 잘 읽어 보면 성경에 아름다운 기도의 모범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기도에 관한 책들이 지금 서점에 상당히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저 단답형으로 들으려고 하지 말고 꼭 책을 사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신학교에서 이 기도 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고, 세례요한도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유대교에서 세모네에습 이라고 해가지고 기도가 딱 정해진 기도가 있어가지고 기도를 가르치고 하는데 놀랍게도 우리 신학교 대학에서 다른 대학에서는 잘 모르는데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기도 학이라는 과목은 정식으로 없었어요.   앞으로 이 과목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도라 하는 말속에는 한문글자를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식이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도” 하면 "빌기" 자에 "빌도" 자거든요.   그러니까 빌고, 빌고, 비는 거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옛날에 우상을 보고 손이 닳도록 빌지 않습니까?  빌고, 빌고 하면 비는 자에게 무시로 온다.   그러니까 뭐 열심히 빌면 잘 안 들어주는 신이라도 워낙 많이 비니까 어쩔 수 없이 조금 안 들어 주겠나 하는 오죽하면 우리 옛 속담에 비는 데는 무쇠라도 녹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기도가 좀 이상해지기 쉬워요.   편안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가지고도 하나님이 아주 고집불통처럼 안 들어 주시는 분처럼 생각을 해가지고 막 그냥 빌고, 빌고, 빌어야만 겨우 들어주는 그런 분으로 인식을 할 때는 그건 잘 못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 중, 그리스도인들도 심성에는 수없이 빌어야 겨우 들어주지 않겠나 그런 의식이 좀 박혀있는 것 같아요.   가뜩이나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이 그런 의식이 조금 있는데다가 교회가 지금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요 솔로몬의 일천번제 해학입니다.   그 일천번제라는 것은 오해가 있는 것인데 그게 뭐냐 면요.  솔로몬이 양 일천 마리를 한꺼번에 드린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잘못 해석 해가지고 솔로몬이 양을 한 마리씩 천 번을 드렸다.   이렇게 해서 잘못하는 것입니다.   천 번 드린 것이 아니고 한 번에 천 마리를 드린 거예요.   그래가지고 일천 번이나 감사헌금 봉투를 갖다내야 하나님이 들어줄까 말까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참 이상한 하나님을 만드는 거지요.   그런 것은 이제 앞으로 시정이 돼야 할 줄로 압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그렇게까지 애를 먹이고 천 번이나 기도해야 들어주고 이럴 것 같으면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내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어떤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판관도 거듭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는 과부를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 여자를 가만두면 매일 와서 번거롭게 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들어 줘야 겠다 해서 과부의 소원을 풀어 줬다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도 가서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라는 게 아니고 “하물며”로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너희 아버지께서 그 구하는 자, 간구하는 자들의 그 기도를 얼마나 참겠느냐 못 참고 얼른 들어준다 하나님은 그런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우리 성도님들은 잘못 들어가지고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처럼 고집불통이어서 번거롭게 해야만 들어 주는 것처럼 인식해가지고 당연히 그저 편안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생떼를 쓰는 그런 잘못된 인식이 좀 있어요.  

   예 그런데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도요 그런 비슷한 경우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것도 왜 야곱의 큰 승리처럼 찬양을 하려고 하는데 사실은 그 장면은 야곱의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겁을 먹고 얍복강을 건너가지 못하는 그런 졸부의 신앙이거든요.   에서라고 하는 형님은 20년간이나 야곱을 향해 이를 갈고 있을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벌써 잊어버린 사람이지 헤픈 사람이고, 털털한 사람이고 하니까 그래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사가 왜 거기에 내려왔냐 하면 야곱의 주위에 지금 마하나임에서 본 대로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 주위에 다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서든지 누구든지 아무도 그 야곱을 헤칠 수가 없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야곱은 지금 믿음이 없어가지고 겁이나가지고 건너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천사가 와가지고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너와 함께 하고 있으니까 에서를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히 건너가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다.   이 말을 하려고 왔을 텐데 야곱의 천사를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천사가 그날 밤 혼이 났지요.   그래서 천사가 나중에 야곱을 때리기도 하고, 환도 뼈를 쳐서 부러뜨리기도 하고, 유골이 나기도 하고 그것은 야곱의 좋은 신앙이 아니고 야곱의 아주 믿음 없어가지고 건너가지 못하는 자기 친형제간도 믿지 못하는 쌍둥이도 믿지 못하는 야곱의 불신앙의 소치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감사한마음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 가능하면 생트집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예쁘게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래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있겠고요.  때로는 탄원,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그런 기도와 간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가 있고요,  그 다음에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하는,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그러한 구하고 찾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허물이 있을 때, 용서와 사죄 은총을 구하는 그런 기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 앞에 정중하게,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좀 또박또박한 말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기도인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처럼 그런 것 구하지 말고, 또 중언부언 그러할 필요가 없이 꼭 필요한 말씀을 정중하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서 우리에게 기도응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에 기쁘시게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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